Archive for May, 2006

고마워 0

어제 저녁 7시쯤 문이 살며시 열리고, 마리나, 빅토리아, 마리아가 차례로 들어온다. “저녁을 먹지 않았으면, 드세요” 라며 가방에서 밥과 김치, 고기를 담은 아주 작은 통을 나에게 건네 준다. 기숙사 식당에서 담아 온 것임에 틀림없다. 감사합니다.

살아가면서 이런 저녁식사를 몇 번이나 더 경험할 수 있을까?

미안해 0

도와주고도 욕 얻어 먹는다는 게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것이다. 훌훌 털어버리기엔 마음에 새겨진 상처가 너무 크다. 며칠전 나는 내가 받은 그 상처 그대로를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려는 어리석은 짓을 범하고 말았다. 이런 행동은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해주지 못할 뿐더러, 오히려 실망감과 이기심만 부추긴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 미안합니다.

이젠 예전처럼 그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없을 것 같다.

백치들 3 0

의심할 여지없이 자격미달임이 명백히 드러났다. 분명 “그래서 어쩔건데” 하면서 쾌재를 불렀겠지만.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얼굴에 침을 뱉고 발로 뭉게는 꼴밖에 안된다는 것은 알 턱이 없고 … 결국 자격미달인 자들은 무지하기 이를 데 없고, 한치 앞을 내다볼 수도 없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또 다른 백치들을 목격하는 순간이다.

만족해하는 임금노예가 될 것인가? 0

“North Country”에서 Josey Aimes의 난공불락의 권력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모습이 공포스러웠던 이유는 바로 나 또한 그녀처럼 지극히 주류에서 비껴나가 있는 마이너러티이며, 권력앞에 끝없이 무기력한 억압받는 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권력에 대한 저항이 불러올 엄청난 파장과 고통이 이미 예견된 것이기 때문에 그녀의 저항은 더욱 공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North Country에서) 남성성으로 대변되는 권력자들에 대한 혐오감과 내가 부여받은 별볼일 없는 특권으로 그 특권마저 박탈당한 자들에게 내가 억압을 가했던 순간들과 일치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나 자신의 비열함에 대한 모멸감마저 들었다.

다수가 소수에게, 억압하는 자가 억압받는 자에게 가하는 습관화된 폭력에 대해 저항할 수 없음, 혹은 저항하려 하지 않음을 생각해 보면 (North Country의 광산 (남성) 노동자들이 여성들에게 가하는 일상적인 폭력이나, 고용주가 노동자들에게 가하는 보이지 않는 위협을 생각해 보자),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노동자들이 안고 있는 불평등, 불합리, 불공평한 처우는 당연시 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노동자의 권리와 생존권을 위해서 절대권력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은 사회의 골칫거리도 위협도 될 수 없다. 오히려, ≪노사과연≫의 이야기처럼, 투쟁의 목적은 “만족해하는 임금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계급의 해방이 그 목적이기 때문에, Josey Aimes의 투쟁이 더욱 아름다운 것이다.

노동절 새벽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