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January, 2005

Another Story of Election 0

I also believe that teachers can exploit their students in order to keep their position or power and thus to oppress newly rising powerholders, as shown in Paul’s case. Furthermore, as shown in Tracy’s case, teachers can deliberately ignore students and their abilities, presupposing that they can never be harmonious with others. Those teachers are more dangerous in that they can ruin students’ whole life due to the teachers’ prejudice. Surprisingly, they hate some students without any special reasons. There must be some reasons - too personal or completely selfish. Isn’t that symbolic violence?

Alexander! 0

알렉산더가 트로이와 비교될 수 있는가? 파렐과 피트가 많은 점에서 유사점 - 치마를 입고 뛰어다닌던지, 사랑이야기라던지, 성적정체성이라던지 - 을 보이고 있지만, 물론 그 답은 NO이다. 피터슨의 Troy는 헐리우드가 만들어낸 악몽이었다. 비록 Troy 자체가 역사가 아니라 신화를 재구성한 것일지라도 그가 역사적 고증은 커녕 일리아드를 읽어보려는 시도라도 했는지 의심스러울 따름이다. 피터슨의 카메라는 치마를 입고 뛰어다니는 피트와 반쯤 벗은 그의 몸매를 쫒아다니는데 혈안이 되어있을뿐 아킬레스라는 인물에 대한 고찰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그는 피트를 이용해 호메르스의 epic을 싸구려 헐리우드 사랑영화로 전락시켜 버렸다. 따라서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면치 못하는 트로이, 혹은 트로이의 영웅 브래드 피트를 알렉산더, 또는 알렉산더의 영웅 콜린 파렐과 비교하는 것은 그다지 옳지 못하다. 뿐만 아니라, 비록 많은 제작비와 긴 시간을 쏟아부은 것에 비해 대다수의 관객에게 만족을 주지는 못하고 있지만, 스톤이 피터슨의 실수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지 않다는데, 알렉산더를 볼 가치가 충분히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올리버 스톤의 알렉산더는 알렉산더 대왕의 독재자로서 그리고 영웅으로서 혹은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를 그려내고 있다. 알렉산더는 절대권력에 대한 역사적인 고찰이며, 그 권력이 영원할 수 없음을 그리고 절대적 영웅도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아귀레, 신의 분노”의 아귀레가 뿜어내는 독선과 광기처럼 파렐을 통해 - 물론 그 비교에는 무리가 따르겠지만 - 알렉산더의 절대 권력자로서의 이기적이고 독단적인 행위들이 마침내 광기로 변하고, 다시 힘없는 인간으로서 권력이 쇠퇴되어 가는 과정이 스톤의 카메라 속에 잘 포착되어 있다.

그러나 한가지 씁쓸한 것은 시기상으로 타이밍이 제대로 맞지 않아서인지, 이러한 권력의 흥망성쇠에 멍청한 전쟁광 부시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비록 감독의 의도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나, 특히 알렉산더의 첫 전투신이 아랍정벌(?)에 나선 부시의 모습과 다소 일치하는 것은 상당히 불쾌한 일이었다. 뿐만아니라 여전히 감독이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고 알렉산더가 역사적 고증에서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아시아가 미개하고 야만적으로 매도되는 것과 아시아의 해방을 명분으로 한 알렉산더의 동방원정은 이 영화의 개봉이 시기적으로 많은 한계점을 갖고 출발했음을 보여준다. 알렉산더시대부터 - 아마도 그 이전부터 - 미국의 패권이 지배하는 현재까지 아시아 국가들의 역사가 억압의 역사로 내몰리는 것과 시대의 영웅 - 물론 서구에서 온 - 이 해방시켜주기만을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아시아의 묘사는 여전히 서구중심의 사고가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물론 영화내에서 알렉산더가 이러한 것들을 일부 부정하기는 하지만.

알렉산더에 대한 반응이 혹평과 호평으로 양분되는 까닭은 이것이 헐리우드 블록버스터급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절대 아니다라는데 있다. 따라서 알렉산더를 트로이나 혹은 글레디에이터와 비교해서는 안된다. 이미 헐리우드에 길들여진 관객이나 비평가들에게 알렉산더는 제작비만 날려버린 졸작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나 마초냄새 풀풀나는 트로이나 혹은 글레디에이터에 주는 억지스러운 감동은 광기에 사로잡힌 그러나 너무나 나약한 알렉산더의 그것과는 절대로 비교할 수 없다.

Election: How To Be Elected 0

우리는 무한한 선택 속에서 살아간다. 지금 내가 글을 쓰고 누군가가 이 글을 읽는 순간조차도 많은 선택과 갈등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미처 쉽게 깨닫지 못하는 것은 때때로 그 선택이 어떠한 과정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가에 관한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선택의 순간은 절대 간과해서는 안되는데, 그 이유중의 하나는 선택이 곧 권력의 이동과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때문이다. 따라서 권력이 이동되는 이 선택의 순간이 공정해야만 하지만, 실제로 공정하다는 생각은 헛될 수 밖에 없다. 영화 Election은 이러한 선택의 순간을 조정하는 권력자들을 잘 비꼬고 있다. 이 영화는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정치권력의 탄생의 순간을 학교 회장선거에 빗대어 조롱한다.

Tracy, Paul 그리고 Tammy는 정치인의 모습을 극단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Tracy는 유능하지만 독단적이고 독재적인 정치인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이 영화가 갖고 있는 힘은 Tracy를 그저 열심히 노력해 자수성가한 여성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적절한 능력과 사회적 배경 그리고 그녀가 갖고 있는 교활함이 그녀가 성공한 열쇠라는 점에서 다른 헐리우드 영화와는 매우 다르다. Tracy는 헐리우드 영화에서의 전통적인 성의 역할을 깨뜨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으며, 다소 그녀는 전투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비록 그녀가 매우 코믹하게 그려지고 있지만… 따라서 대부분의 남성에 의해서 움직이는 Carver High School에서 그녀가 지나치게 나대는 것과 그 학교를 통제하려는 Tracy의 시도는 McAllister 교사에게 위협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사뭇 멍청하기는 하지만, Paul은 McAllister 교사에게 탁월한 선택이 될 수가 있었고, 전통적인 성역할 - 영화에서나 현실에서나 - 을 고수하려는 남성지배집단의 시도는 완패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있어서 Tammy의 경우는 더욱 위험스러울 수 밖에 없다. 특히 그녀의 성적 정체성이나, 그녀의 연설에서 나타난 것과 같은 선동적인 좌파적 성향은 사회의 위협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Tracy가 당선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생각하면, Tammy의 행동이 사회전체의 위협이라기보다는 남성집단에 대한 위협, 혹은 도전이라는 느낌이 더욱 강하게 든다. 우리가 처한 정치적 현실에 비추어 볼때, 이들은 정치세계의 극단적인 묘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것이 단지 정치판을 비판하는 것이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것은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 어느 곳에서도 쉽게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현상이 영화 Election에서 나타난 것처럼 교육의 현장에서도 일어난다는 것이 애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부로 내몰린, 특히 선택받지 못한 마이너리티들에게 이 영화가 주는 힘은 100%의 노력만으로 성공할 수 없다는 진실의 규명에 있다. 따라서 공정하지 못하고, 다소 교활하기까지 한 Tracy의 행동에 누구도 비난을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사회가 혹은 교육이 생산해 낸 문화안에서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사 스스로가 저지르는 무수한 symbolic violence를 반성하고 비난하기 전에, 학생들의 잘못을 혹은 그들이 지나치게 나대거나 게으른 행동을 탓하는 것은 권력의 남용으로 밖에 이해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Shark Tale: The Return to the Disney 0

Shark Tale is filled with a series of parodies of media. It is somewhat fun to listen to sharks’ humming of “Jaws” theme song. But the unpleasant thing in Reef City is that there isn’t anything about sarcasm of the society and the media. The attacks at Disney have suddenly disappeared behind tales of fishes. Look at Angie and Lora! Angie is the traditional image of woman in Disney animation, hollywood movies, or thousands of fairy tales, even though she does not love a black prince but poor Oscar who washes whales. Nevertheless, she is always ready to be loved. Also, Lora is described as the conventional bitch in TV shows who woos away other girl’s boyfriend. (Why do a girl always have to be the enemy of her own genders in order to belong to a man?) As always, in Shark Tale, the girls cause some troubles, which are settled by the boys. In addition, boys fight for the justice, peace, or something big, tremendous, while girls fight for the boys. I don’t know where all bitter sarcasm of Shrek has gone in Shark Tale. If DreamWorks’ strategy is to make only money, it is surely successful. But Shark Tale is a failure in that it distorts the real world under the sea, viewing it from eyes of human beings. I don’t believe that at least fishes discriminate their own species just like the world outside the s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