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화봉 다시 오르다

소백상 등반을 위해 새벽 일찍 기차에 올라탔다. 일요일밤 늦게까지 번역하느라 몸은 지칠데로 지쳐있었지만, 그렇게 바라던 산을 다시 오른다는 설레임에 발걸음은 그다지 무겁지 않았다. 2001년 겨울 아무런 준비없이 J와 한걸음에 뛰어 올랐던 산이라, 어리석게도 보온병에 뜨거울 물과 인스턴트 커피만 달랑 들고 산행을 시작했다.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 했던가. 산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가족이고 친구다. 오후 2시 연화봉정상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은 나에게 초콜렛이며, 과일이며, 나중엔 아이젠까지 챙겨주신 연화봉 정상에서 만난 두분이 아니었더라면, 아마도 오늘 산행은 최악이었을 듯 싶다. 덕분에 허기도 채우고 후들거리는 다리도 진정시킨 후에 눈덮인 산도 한걸음에 달려 내려올 수 있었다. (문득 대학시절 일주일을 함께 지리산을 종주했던 분들이 생각난다) 비록 3번째 도전에서도 종주는 실패했지만…

연화봉은 같은 자리에 같은 모습 그대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5년전 모습 그대로, 그리고 그보다 2년전 모습 그대로, 나의 고통들을 치유해 줄 준비를 하고 서 있었다. 삶에 상처투성이인 내 모습을 반겨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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