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Education' Category


교육은 기업의 미래다 0

교육이라는게 돌고 돌아서 최종적으로 자신한테 그 화살이 돌아오기 마련인데… 한 인간의 미래 결국, 사회의 미래를 책임질 사람들이 모여 앉아서 탁상공론을 하거나, 잡담을 늘어놓고,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시도하며, 결과적으로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기고 있는 행동을 보고 있자니 우울함이 밀려온다.

교육이라는 게 이익을 생산해내는 사업이어서는 절대 안 되는 것은 당연하고, 혹여 그렇다 할 지라도, 생산된 이익의 대부분을 교육의 수혜자에게 되돌려 줘야 함에도 불구하고, 높으신 분들은 여전히 신념도 없고, 철학도 없고, 양심도 없는 듯 싶다. (아무런 준비도 대책도 없이 무조건 외국대학으로 학생들을 내몰려고 하는 사람들은 생각하기도 싫다.) 일차적인 피해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니면 알면서도 모른 체하는) 학생들이지만, 분명 연쇄반응에 의해서 가까운 미래에 더 큰 피해가 자신들에게 돌아 올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는지…

아무런 성과도 없었고, 논제와는 상관없는 준비된 멘트만 날리는 사람들과 마주 앉아 있는 내내 한숨과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11시까지 기다린 후, 기숙사를 들렀다. 나를 반갑게 맞아주고 조금이나마 나에게 의지하려는 학생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don’t habitualize yourself! 0

Marina는 한국어 교재를 가지고 나를 찾아온다. “굴뚝같다”라는 말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굴뚝같다” “굴뚝같다” “굴뚝같다”

한참을 골똘히 생각한 나의 결론은 굴뚝같이 길게 생길 걸 표현하고자 할때 우리는 “굴뚝같다”라는 표현을 한다고 친절하게 이야기한다. 예를 들면, 키만 큰 남자를 표현하고자 할 때, “그 남자 굴뚝같애”라고 이야기한다고. Marina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고는 하지만, 분명 그녀의 얼굴 한구석에는 의아함이 역력하다. 한참후, 나는 “굴뚝같다”라는 말이 무언가를 진심으로 바랄 때 사용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다시 설명해준다.

분명 나는 “굴뚝같다”라는 말을 최근에 여러번 사용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뜬금없이) “굴뚝같다”라는 네글자를 나에게 보여주었을 때, 나의 반응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의미를 혼동하게 되고, 따라서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며 결국 당황하게 된다. 언어라는 것이, 다시 말하면 한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리면서 우리는 (적어도 나는) 말들을 별 생각없이 내뱉는다는 생각이 든다. (영어의 중요성과 영어가 파생시키는 힘들에 대해서 항상 학습자들에게 강조하면서, 내가 매일 사용하는 국어의 중요성에 대해서 얼마나 무시하고 있었는가?) 그러나 우리가 언어를 별 생각없이 내뱉게 되면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언어가 습관이라면, 언어를 가르치고 배우는데 있어서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위의 나의 경우에서처럼 말이 혹은 표현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기계적으로만 암기(rote memorization)만하는 것은 언어의 오용(誤用)을 야기할 수 있다 (부끄럽고 멍청하게도 나는 아직도 굴뚝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알지 못한다). 일상적이고 습관적인 것에 대해서 영어로 말하거나 듣거나 읽거나 쓸 때, 아무런 어려움없이 언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상황이나 익숙치 않은 상황에서 언어의 사용은 일상적인 아주 쉬운 단어로도 표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황하거나 전문적인 용어만을 찾아내기 위해서 고군분투(孤軍奮鬪)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피상적이고 얕은 지식은 습관적인 언어의 사용과 함께 그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대상언어를 학습하는 학습자를 단순히 말만 많게 (talkative하거나 garrulous하거나 혹은 loquacious) 만들 뿐, 주어진 상황이나 정황에서 그 대상언어를 적절하게 사용하는데 방해요소가 되는 것이 분명하다.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보면, “the more time one spend studying/learning language, the better s/he can speak”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특히 언어를 습득하는데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언어습득의 과정을 단순히 Pavlov의 conditional reflex에 국한시켜서는 절대로 안 될 것이다.

We are absolutely different from dogs, as you know.

A Playground of Their Own - kotesol 0

한국의 영어교육의 미래가 암담한 이유를 바로 이 학회 (KOTESOL) 참관을 통해서 확실하게 알 수가 있었다. 그렇게 교수들이 KOTESOL에 참석하려 하지 않았던 이유와 심지어 노골적으로 학회를 싫어했던 이유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강의실은 한국 영어교육의 미래를 책임질 일련의 집단 - 외국인 영어강사들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분명 영어강사들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 으로 넘쳐났지만, KOTESOL은 외국인 강사들의 학회 참가목적이 그들의 커뮤니티 결속강화라는 것과 자신들의 영어교육에 대한 무지함을 국제학술대회를 통해서 자인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 말고는 특별한 것은 전혀 없었다. 뿐만 아니라, 학회참가를 위해서 제주도에서까지 상경한 것을 미루어 짐작하면, 국내 거주하는 외국인 강사들의 학회에 대한 열정은 분명 대단함에 틀림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전문적인 혹은 학술적인 지식을 갖고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지에 대해서 세번의 presentation에 참여하는 동안에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게다가 이전부터의 기우 - 학회에서 특별히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없을 것이라는 - 는 발표자들의 성의없음과 3번이나 개최한 주최측의 상업적인 목적에 의해서 불식(拂拭)되지 않았다.

분명 plenary speech에서 Amy B. M. Tsui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의 영어교육과 관련한 정책과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다른 presentations에서는 그녀가 제시했던 문제점들에 대한 충분한 논의는 전혀 이루어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적어도 내가 관람한 presentation에서는) 오히려 지금까지 자신들이 해왔던 진부하고 틀에박힌 methodology가 여전히 유효함을 한번 더 확실하게 해주는 계기만 마련해 주었다. 교육정책이 불합리하고 모순투성이라고 조롱하기에 앞서 교육정책에 부합할 수 있는 적절한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우선 되어져야 한다. KOTESOL conference 내내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것은 진정으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국가들의 영어교육의 미래를 고민하는 외국인 강사들의 모습을 전혀 찾아 볼 수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아시아 시장에서 그들이 지독하리만큼 악착같이 살아남으려 한다는 인상만 각인시켜주었다.

결국 한국 영어교육의 미래는 한국인 정책가, 한국인 교사, 한국인 학생들의 몫이다. 스스로 문제점을 지적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없이는 영어교육을 통한 식민지화만이 남겨질 것이다.

Русский 0

하루종일 러시아 알파벳과 씨름을 했다. 일단 생긴 것도 영어와는 다를 뿐더러, 모양이 같더라도 (비슷하다는 것이 더 어울릴 듯하다), 발음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알파벳을 숙지하는 데도 여러 날을 소비해야 할 듯하다. 두어시간을 그리다 보니 이제 책에 나온 글자와 사뭇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도 러시아 학생들이 이쁘게 써내려갔던 글자들을 흉내내려면 아마도 몇주는 열심히 그려야 할 듯하다. 발음도 워낙 한국어와 영어에 없는 발음들이 많아서 Marina Galyuk과 Maria Maslyukova가 기꺼이 녹음해준 테이프를 따라하면서, 공부를 했지만 역시 발음도 그다지 만만치는 않다.

러시아어를 빈 종이에 빼곡히 써내려가다, 문득 중학교 1학년 영어시간이 떠올랐다. 그때만해도 지금과는 다르게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영어를 공부한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다. 물론 시골이라서 더욱 그랬을테지만… 요즘 초등학교도 입학하지 않은 아이들이 알파벳을 읽어 내는 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지만, 그걸 좋아라 따라하는 아이들을 보면 불쌍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수년후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영어를 싫어할 것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대학원과정중, Phonics를 심하게 공격하는 교수님이 있었다. 학자들 주장이야 들을 땐 그럴 듯하고, 수긍이 가지만, 실제 교육현장에 가면, 교육계를 통채로 흔들어 놓지 않는 이상 그러한 주장들은 단지 이론에 불과하다. 그분에 따르면, 비평적 혹은 비판적으로 영어교육을 해야한다는 주장인데, 알파벳도 모르고 영어를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아이들에게 비평적이니 비판적이니 하는 이야기는 먼 나라의 이야기로 밖에 들릴 수 없다. 지금 나에게 러시아어를 비평적 혹은 비판적으로 학습하고 교육해야한다고 아무리 떠들어대도, 글자하나 읽는데도 몇분이 걸리는 나에게 비평과 비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다고 해서 비평적, 비판적 영어교육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낡고 쓸모없는 methodology라고 해도, 분명 수업중에 적절하게 활용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끝으로 한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자신의 교육철학과 다르다고 해서 자신의 것 이외의 모든 것을 배척하고 증오하는 것을 그만두는 것이 진정한 비평적, 비판적 교육의 첫걸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listen without PREJUDICE 0

Last week, I met one of my Vietnamese students in order to talk about the publicity video for the new-coming students in Vietnam. At the end of the conversation, she was angry a little bit and asked me. “Sir, why do you just say one or two words, when you talk to us (Vietnamese)?” I was somewhat surprised and embarrassed. I quickly answered back that I have never done that before. But she continuously asked me. “No, your English is totally different and speak very well, when you speak with Russian students or American professors.”

Was it? Did I? Right after I said goodbye to her, I just thought about the conversations that I made with Vietnamese students. She was right! I had a terrible prejudice, bias, and stereotyping to the Vietnamese students. Because of their strong and unusual accent (it may be unusual only to me), I just felt that their English is not perfect whenever I talked with them. What makes worse is that I was forced unintentionally to use easy words and short sentences all the time. In addition, when I talked to them in English, it is even less burdensome than I talk with people from English-speaking countries. However, I always tried to find out the proper words, whenever I speak with native English speakers.

Does it mean that the native English teachers are much better and more beneficial than nonnative English teachers, especially when students learn the competence of “Speaking”? I do not agree with this idea. Also, “which one is better, native or nonnative, in English language teaching” has been controversial among scholars. Reflecting on my experiece with Vietnamese students, I can’t erase the idea that native teachers may be even better than nonnative teachers. Nevertheless, teachers’ and students’ attitude toward both of them is the point that I must not ignore. In other words, teachers’ rash judgment, such as the prejudice, the bias, and the stereotyping to their students, can change their stuedents into good one or bad one, and vice ver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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