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2006

슬럼프 1

오후 늦게 갑작스레 가슴에 통증이 느껴졌다.
컴퓨터 전원을 급히 내리고 사무실을 뛰쳐나왔다.
반복되는 일상때문일까?

마침내 오고야 말았다.
슬럼프.
아무리 뛰어도 제자리 걸음.
더이상 나아갈 수 없음을 인지했을 때 느끼는 답답함이란.
삶에 미동의 변화가 요구된다.

자발적 복종 0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우리를 은밀히 노예로 만드는 유혹이다. 이에 비하면, 폭력으로 통치하는 방법은 그다지 겁나지 않는다.

- 자발적 복종, Etienne de La Boetie

과거에는 3S (Screen, Sports, Sex) 라고 하여 정부가 주도적으로 국민의 귀와 눈과 입을 막기 위해서 국민들을 스포츠로 현혹하고 애국심을 강요했다. 국민을 집단적으로 조정하고, 정치로부터 멀리하게 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 이제 정부가 일궈놓은 그 자리를 미디어와 국민들 스스로가 꿰어 차고 있다. 아주 자발적으로 말이다.

여느 때와는 달리 오늘 밤엔 거리에 차도 사람들도 없이 한산하다. 라디오에서마저 정규방송을 취소하고 연예인들을 대거 투입시켜 들을 권리마저 박탈시킨다. 두어시간의 말그대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특별 축구 중계를 마치고, 또 다시 월드컵 특별뉴스를 시작한다. 아마도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를 붉은 옷을 입은 어린 아이들과, 머리엔 뉴욕 양키즈 모자를 쓰고 붉은 티를 입은 청년과, 머리에 붉은 두건을 두른 중년의 아저씨, 모두 “대한민국”이라고 외친다. 때로는 인터뷰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게 자랑스럽다”라고 외친다. 그들을 “태극전사”라고 부른다. 그러나 태극전사는 없다. 그들이 외치는 꿈도 없다. 대한민국 국민은 고통스럽다. 이것이 현실이다.

나는 축구가 싫다. 축구에 미친 미디어도 대중적 광기도 싫다. 이러한 정기적인 집단적 최면행위는 스스로를 노예로 전락시킬 뿐이다.

꺼져… 제발… 0

지독하게
이기적인
XXX놈들!

제발 꺼져버려…
꼴도 보기 싫다!

고마워 0

어제 저녁 7시쯤 문이 살며시 열리고, 마리나, 빅토리아, 마리아가 차례로 들어온다. “저녁을 먹지 않았으면, 드세요” 라며 가방에서 밥과 김치, 고기를 담은 아주 작은 통을 나에게 건네 준다. 기숙사 식당에서 담아 온 것임에 틀림없다. 감사합니다.

살아가면서 이런 저녁식사를 몇 번이나 더 경험할 수 있을까?

미안해 0

도와주고도 욕 얻어 먹는다는 게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것이다. 훌훌 털어버리기엔 마음에 새겨진 상처가 너무 크다. 며칠전 나는 내가 받은 그 상처 그대로를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려는 어리석은 짓을 범하고 말았다. 이런 행동은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해주지 못할 뿐더러, 오히려 실망감과 이기심만 부추긴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 미안합니다.

이젠 예전처럼 그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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